님, 잘 지내셨나요? 틸 입니다.
저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셨다면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오늘은 스튜디오 틸의 영감과 생각을 담은 뉴스레터-- '그리는 마음'의 마지막 발송일입니다. 무엇보다 저의 소소한 이야기를 함께 들어주시고 공감해 주셨던 구독자분들께는 마음 깊은 곳에서의 감사와 함께, (사실 스스로에게도 조금은 갑작스러운 결정이었기에..) 죄송한 마음도 있어요. 서두에 인용했던 제인 오스틴의 말을 빌려, 다만 이 결정이 저의 내면의 이끌림에 최대한 솔직하게 반응하기 위한 것임을, 아마도 그동안의 제 이야기를 지켜봐 주셨던 구독자분들이라면 알아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의 '그리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다만 이제는 '편집된 글과 그림의 발송하기'보다는, '더 날 것의 생각과 더 많은 그림들을 펼쳐보일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기에 앞으로는 정기적인 유료 구독의 형태 대신에, 블로그나 인스타와 같이 열린 채널들에서 좀 더 자주,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려고 합니다.
편지를 통해 쌓아온 그간의 글과 그림들을 돌아봤어요. 퇴사 후 부모님 곁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루틴을 시작하며, 저에게는 정체성의 변화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무명이지만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길로 가자고 마음을 먹었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디자인을 하는 직장인'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변화했음을 믿어야 했어요. 뉴스레터를 보면 초반에 이런 무의식의 갈등이 보이더라고요. 작업시간은 있는데, 그리는 게 어색해서 정작 작업을 미루는 모습들 말이죠.
그렇기에 뉴스레터 <그리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저를 위해서 꼭 필요한 약속이자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예전과 비교해 보면 지금은 다행히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어색하지 않고, 작업 시간이 두려워 마냥 미루지도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슬슬 스스로에게 또 다른 실험을 하고 싶어진 걸 수도 있겠습니다. 이건 어쩌면 아주 미묘한 차이일수 있는데요, '만들어 내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까?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프랙티스가 나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물리적으로는 내년 초에 이사 갈 새로운 환경에서 현재와는 또 다른 공간 세팅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집이지만 한쪽 벽에는 나무 합판을 대어서 좀 더 물감 튀는 걱정을 안 할 수 있도록 하고, 벽지 떨어질 걱정 없이 자료들을 붙여서 보거나, 캔버스 면천도 핀으로 편하게 고정할 수 있도록이요.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부분이에요. 뉴스레터를 잠시 멈추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편집해서 보이게 되는 조건을 없애보고 싶었어요. 조금이라도 안전을 추구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서 마구 실험하고 도전하면서 나온 것들을 그때 그때 모으고 정리해서, 그게 그날의 작업이 되고, 그 달의, 그 해의 작업이 되는 그런 프로세스를 만들어보고 싶어졌습니다.